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겨울날 발가락이 보이는 다 닳아진 신을 신고 신발가게 앞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고, 교회 갔다 온 부인이 새 신발 한 켤레와 양말까지 사서 보냈다. 거지 소년이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 당신은 예수 부인이지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행 20:35)
미국의 현대작가 아서 워드는 도전에 대해, 어떤 사람은 역경 앞에서 자신이 부서지고,어떤 사람은 그 역경을 깨뜨리고 기록자가 된다. 지도자에 대해, 보통 지도자는 모든 일에 모범을 보이는 지도자고, 위대한 지도자는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지도자다. 새해에는 모범을 보이는 보통 지도자를 넘어 감동을 주는 위대한 지도자로 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 시골 길에 44번 버스 기사는 여자다. 으슥한 길에서 두 명의 험상궂은 청년이 탑승하자마자 흉기를 든 강도로 변해 30여명 승객 전원의 주머니를 턴다. 젊은 여자 운전수를 끌고 숲으로 데려가 집단 성폭행을 한다. 한 젊은 승객이 그것을 보고 여자 운전수를 보호 하려고 갔다가 부상만 입고 4사람이 버스로 돌아왔다. 이미 피투성이 된 기사는 강도 둘을 태우고 도와주다 부상당한 청년의 짐을 땅에 던지며 탑승을 단호히 거부하고 출발한다. 얼마가지 않아 여자 기사는 버스를 낭떠러지로 몰아 모두 사망한다. 이 실화를 근거로 대만 영화감독 데이얀 엉이 만든 10분 단편 영화 ‘버스 44’가 부산국제영화를 비롯한 세계 국제영화제에서 모든 관객에게 엄청난 감동과 회개를 주었다. 여리고 골짜기에서 강도 만나 피투성이 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는 제사장들 레위사람은 누군가? 한사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우리 중 누군가?
독일을 상대로 연합군 프랑스와 영국이 서부전선에서 참호를 파고 대포와 총으로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처참하게 치루는 중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았다. 영국과 프랑스 양군의 참호에서 “고요한밤 거룩한밤” 캐럴이 백파이프 연주와 함께 터져 나왔다. 양군은 참호에 총을 버리고 진영에서 모두 나와 합창을 했다. 성탄절에는 샴페인을 나누며 축구경기도 하고 성탄 선물도 교환했다. 그 후 지휘관들 몰래 전보를 내통하며 포탄 공격 때는 서로 알려주어 상대의 피해를 적게 하였다. 전쟁이 아닌 전쟁 속에서 독일의 패전으로 연합군은 승리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이것을 캐럴의 기적,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렀다. 이 실화가 「메리 크리스마스」란 제목으로 영화화 되어 큰 감동을 주었다.
사색당파 속 정유왜란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역적으로 모함하여 199명의 문무종신들이 이순신의 목을 칠 것을 간했다. 거기 유성룡 대신도 있었다. 당시 영의정 이원익 한사람만이 선조왕에게 “그리하시오면 아니 되옵니다. 전시에는 장수를 바꾸지 아니하옵니다. 어찌 충신 이순신을 죽이려 하옵니까?” 이순신을 질투했던 선조도 한사람의 바른말을 듣고 사형을 철회한다. 그 후 이순신은 복직되어 12척 거북선으로 300여척 넘는 왜척을 진도 울돌목에서 물리쳤다. 그때부터 정승 이원익을 사람들은 청백리라 불렀다. 우리나라도 이런 충신이 있으면 얼마나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겠는가? 어디나 모두 자기 유익을 위한 간신배들만 우글거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