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30년 된 겨울코트를 버리지 않고 소중히 보관하며 입고 다닌다.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가난한 집사가 자기는 산적도 입은 적도 없는 고급코트를 몸 약한 나에게 따뜻하게 입으라고 준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낡아지면 여러 번 수선을 했다. 내 자화상 같아 더욱 버릴 수 없다. 필자는 폐결핵 3기를 두 번씩이나 말기암으로 위 반절 췌장 1/3 십이지장 전부를 적출하는 수술을 했다. 필자가 낡은 나의 코트를 버리면 걸레가치도 없다. 그러나 내가 버리지 않는 한 내 재산 보물 첫 번째다.
주님이 나를 버리시면 필자는 세상 어디에도 쓰임 받을 곳이 없다. 몸으로 쓸 수 있는 공사현장 일용직으로도 쓰임 받을 자격도 없고 신체 부분 세 개나 잃었으므로 흠이 있어 제사장도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허물과 연약을 씻어내고 말씀의 검으로 수술하여 주의 은혜로 나로 나 되게 하셨다(고전15:7) 주님이 나를 버리면 나는 아무 곳도 쓸 곳이 없다. 그러나 주님이 버리지 않고 쓰시는 동안 나는 주님의 보배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사62:4)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도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8)
필자의 교회가 섬기는 정신지체 장애우시설인 어린양의집에 상당한 아이들이 부모가 양육을 감당하기 어려워 아이들을 입원하여 영구돌보고 있다. 그 중에는 더러 부모가 버리고 가며 편지로 전화로 눈물 흘리며 부탁한 아이들이 있다. 자식을 버렸다는 사연과 형편과 아픔으로 아이 앞에도 직원 앞에도 나타나지 못한다. 어떤 이유로든지 누구에겐가 버림을 당했다는 것만큼 아픈 것은 이 세상에도 저세상에도 없다. 수십 년 버림받음의 고통을 보아온 필자는 30년 동안 변함없이 보잘 것 없으나 코트를 입고 30여년 오래된 낡고 수없이 수선한 심방가방을 들고 교회를 가고 심방과 여행을 간다.
내 아내 내 자녀 이토록 평생 병약한 나를 버리지도 업신여기지도 않는 내 교회 내 교인 나를 아는 모든 사람 버리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안산제일교회를 신학졸업 후 부임하여 오늘까지 섬긴지 33년이 되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