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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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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06-24 칼럼
해는 어디에 있어도 아름답잖아요.
담임목사 허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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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연출가 중 최고라 인정받는 나영석 피디의 넋두리 영상을 봤습니다. 하늘의 일몰을 보며 자신의 연출 경력도 이제는 지는 해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합니다. 뜨겁게 떠오르는 후배 피디들에게 조금씩 밀리는 것 같아 서글픔을 느낀답니다. 그러더니 막내 피디에게 자신을 위로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선배님은 여전히 뛰어나시고 충분히 잘 하실 수 있습니다." 뭐 이런 격려를 해달라 합니다. 기대감이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노골적으로 기대하는 상대를 만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막내 피디의 한 마디가 주변의 모두를 감동시킵니다. “해는 어느 방향에 있어도 아름답잖아요.” 지는 해와 떠오르는 해, 모두를 존중하는 간결하면서도 멋진 표현입니다. 

 

   이 영상을 보며 전도서3장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3:2-8)

 

   지혜자는 총28가지의 때를 소개하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피하고 싶은 것을 함께 제시합니다.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는 때이든지, 피하고 싶은 순간들이 닥칠 때이든지,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것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일들을 만나면 자연스레‘왜’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실 때에 베들레헴 지경의 두 살 이하 모든 남자 아이들은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런 죽음마저 군말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인생의 리듬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떠오르는 해가 있고 지는 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혜자는 인생의 허무함을 찬양하는 것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원치 않는 일로 인해 낙심한 인생을 향해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아리송한 말씀이지만 아마도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바다의 물고기가 바다의 광대함을 헤아릴 수 없듯이, 우리는 영원에 대한 사모함이 있지만 그걸 측량할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마지막을 볼 수 있고, 수백 수천만의 삶과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나라들의 결국을 알고, 개개인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과 기쁨이 전부 엮여 어떻게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그럼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답답한 현실로 인해 인생이 허무하다며 푸념을 늘어놓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심과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심을 신뢰할 것인지. 저는 하나님의 창조와 아름다운 계획을 신뢰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무턱대고 모두 잘 될 것이라는 자기최면이 아닌, 창조주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치 않는 일을 만나 실의에 빠진 모든 분들을 응원하며 격려합니다. 해는 어느 방향에 있어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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