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Photo by [Bahareh Bisheh]
전쟁터에서 부모 잃은 소년은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 땅 위에 어머니 그림을 그리고
그 품에 잠든다.
전쟁만큼 처절한 살인은 없다.
고향 부잣집 김씨가 모내기철 논에 갔다가 어미 품 떠난 어린 두루미 새끼를 잡아왔다. 갈대상자에 갇힌 새끼가 상자 틈새를 찾아 주둥이를 쪼더니 어느 날 네 살 된 아들의 눈을 쪼아 실명시켰다. 그 집안은 망하는 재앙이었다.
보잘 것 없는 날 짐승이라도 모자지간을 떼어 놓으면 안 된다는 교훈으로 시골 우리들에겐 큰 가르침을 주었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출 23:19)
헨델은 천재적 작곡가로 태어났으나 두 가지 약점 또한 있었다. 건강이 약해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고, 가난하여 이웃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옥중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메시아 곡은 금식하다시피 하며 전심을 다해 24일 만에 완성한다. 영국왕궁음악실에서 첫 연주를 했을 때 영국 왕 조지 2세는 왕실 음악 감상자들과 함께 기립하여 감상했다 하여 헨델의 메시아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는 어디에서라도 뜻있는 음악가는 기립하여 감상하고 있다. 그는 그 후 총 32회를 연주하고 숨을 거두었다.
황제의 기립박수는 그의 질병과 가난과 음악의 감동과 수고에 대한 격찬이었다.
오전, 오후, 밤은 주께 받은 나의 때 생명이다. 휠체어를 의지한 나는 기도제목이 하나 있다. “주님 때마다 무탈의 기적을 주소서.” 어느 날 밤 잘못된 음식감염 탓인지 열병으로 한 달 쌓아올린 건강을 모두 잃어버렸다. 유년시절부터 몸이 약해보였던 탓에 고모님은 나를 품에 안고 “주여 우리 아가 무탈하게 자라게 하소서, 무탈하게 자라게 하소서.” 반복기도가 아직 가슴에 남아 있는가보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을 보면 고모의 품에 안고 드린 무탈기도는 실로 위대한 중보였다.
누워 있으니 교회가 보이고, 종들이 보이고, 민족이 보이고, 열방이 보인다. 모두 무탈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가능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병들면 어쩔 수 없다. 늙으면 마음뿐이다. 침묵할 수밖에 없다. 더욱 맘 없으면 그만이다. 벗어나려고 많은 것을 시도하고 생존을 건 도전으로 맞서도 우리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하늘은 이제 그만 멈추라시며 모든 것을 다시 할 수 있는 그날을 준비하라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