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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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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12-24
칼럼
평안의 능력
담임목사 허요환
‘평안’(平安)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뜻풀이는 ‘걱정이나 탈이 없음’입니다. 비슷한 단어로는 안녕(安寧), 안평(安平), 평강(平康), 무사(無事), 무고(無故) 등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용례를 따르자면, 평안이란 걱정스런 일이나 사고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평안은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문제와 사고가 몰려오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도행전의 스데반 집사를 통해 그런 평안을 살펴보겠습니다.
스데반은 예루살렘교회가 구제와 섬김의 일을 위해 세운 일곱 집사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자신처럼 헬라어를 사용하고 로마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 즉 헬라파 유대인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선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다가 아마 논쟁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스데반의 지혜를 헬라파 유대인들이 당할 수 없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가르침에 대해 마음을 열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모를 꾸밉니다. 거짓 증인들을 매수하여 스데반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게하고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합니다. 스데반에 대한 고발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스데반이 모세 율법을 무시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했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게 됩니다.
이미 답이 정해진 재판이 진행됩니다. 그의 생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사람들의 눈이 있습니다. 모함과 말도 되지 않는 거짓 증언들이 있습니다. 증오심이 가득한 얼굴이 있습니다. 곧 스데반을 향해 날아올 돌멩이들이 있습니다. 이 상황이 강요하고 있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표정이 “천사의 얼굴”(행6:15)과 같았다고 기록합니다. 어떻게 절박한 상황에서 천사의 얼굴을 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는 분노에 차 자기에게 달려드는 군중들의 눈과 얼굴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을 주목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스데반은 자기 주변에 펼쳐진 세상이나 사건이나 문제를 본 게 아닙니다. 스데반이 본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서 자기를 응원하고 계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이요 예수님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주목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잔인한 폭력 앞에서도 평안을 유지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엇일까요?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른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창한 것을 목표로 두는 게 아닙니다. 내 얼굴 표정 하나 하나가 예수님의 얼굴을 닮아가다가 예수님의 얼굴처럼 변화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른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평안함을 누릴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