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란?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지만
'큐티'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성경과 교회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실천해 온
“경건훈련”이 '큐티'입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 찬양, 본문읽기, 말씀묵상, 적용, 나눔 과 같은 틀의 큐티는
1882년에 시작 되었지만,
지나온 시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먼저, 성경에 나타나는 큐티의 모습을 살펴 보겠습니다.
1. 이삭의 묵상
저는 '큐티' 하면 가장 먼저 이삭이 떠오릅니다.
창세기 24장 63절
“이삭이 저물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노년에 얻은 아들입니다.
이삭이 출생하고 자라날 무렵에는
아브라함의 가문은 이미 가나안에서 터를 잡고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이삭이 자라나는 동안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시켰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쳐질때도
이삭은 순종할수 있었습니다.
이삭이 장성한 뒤에
이삭의 아내를 구하고자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먼길을 떠났고,
십수일을 지나 아내 리브가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들에서 묵상하고 있는 이삭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삭의 묵상이
규칙적이고 습관적 이었음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삭은 장성한 뒤에도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졌습니다.
성경이 없던 그 시절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들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묵상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장면은
묵상하며 거닐고 있는 이삭을 처음 본 리브가가
이삭이 들판에서“배회”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4장 65절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 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여기서 '배회'는 목적없이 돌아다니다 라는 뜻 입니다.
그런데 원어 성경에는 “배회”라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들판에서 우리에게 오는 사람이 누굽니까?
들을 가로질러 오는 사람이 누굽니까?
이렇게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말로 번역할 때,
번역자들이
리브가의 입장에서 그녀가 느꼈을 느낌을 충분히 살려서
번역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의 큐티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배회”하는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의 시간입니다.
성경이 완성되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지던 시절에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는 삶
큐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큐티하는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계속해서
성경 시대 큐티의 모습들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