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해 전 터키 성지순례 도중 바울의 고향인 다소에서 갑바도기아로 오는데 우리가 탄 버스가 높은 산맥을 계속 지나치고 있었다. 안내원의 말을 들으니 그것은 '타울러스 산맥'이고 사도 바울은 이 산을 타고 넘으면서 전도여행을 다녔을 것이라고 하였다.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밖은 어둑어둑한데 오른쪽 차창으로 평행선을 따라 동행하는 그 산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 뜸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바울은 어디서 밥을 먹었을까?"
피곤한 몸이나 잠자리 걱정이 아니라 밥걱정이 앞선 것은, 저녁 식사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탓도 있겠지만 내 경험상 그것은 무시 못할 현실이었다.
지지난해, 소매물도에 가기 전날 밤 통영항 근처에 방을 정하고 장보러 나갔다. 품목은 초콜릿과 김치와 밥 몇 개씩이었다. 14년 전에 갔을 때 밥하는 집이 없어서 고생한 적이 있었고, 이번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물론 섬에는 교회가 없고 다만 믿는 이가 한 사람 있을 것이라는 소문만 듣고 가는 길이니 할 수 있는 한 미리 챙기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이런 준비도 자주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피곤하고 심한 탈진엔 초콜릿 만한 것이 없다. 진공포장 김치에 이어 밥(햇반)마저 포장되어 나온 이후엔 적어도 나에겐 살맛 나는 세상이 되었다. 이 밥도 그대로 먹으면 약간 '된' 맛이 난다. 그래서 끊인 물에 약 10분간 담가둔 것을 준비하고, 또 먹기 전에 2분 정도 전자렌지에 돌리면 제 맛이다. 말하자면 뜸을 들이는 것이다.
소매물도는 15세대가 사는 작은 섬이다. 그런데도 경남지역 관광책자의 첫 페이지는 이 섬의 몫이고, 통영항 여객터미널 제일 넓적한 벽면 역시 이 섬사진이 차지하고 있다. 바로 등대섬이 있기 때문이다. 등대섬은 소매물도에서 70m의 자갈밭을 사이로 하루에 두 번 썰물 때 연결되는 섬이다. 등대섬은 말 그대로 등대가 있고 그것을 관리하는 3명의 등대원이 있을 뿐 다른 거주민은 없다. 8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13초를 간격으로 빛을 돌리는 이 등대는 절경 중에 절경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등대(섬)를 가장 멋지게 보기 위해서는 맞은편 소매물도 산에 올라야 한다. 거기에는 한국 유일의 산꼭대기 초등학교(폐교됨) 교정도 둘러볼 수 있다. 보기 싫지 않은 펑퍼짐한 푸른 초원과 깎아지른 절벽위로 백학 한 마리 힘껏 고개를 쳐들은 등대섬을 발 아래에 두고서 등짐을 풀었다. 밥때가 늦기는 했지만 준비한 자의 행복을 누릴 차례다. -최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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