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저야 살아가는 숙명이기에
낮은 곳을 찾아서 흘러갑니다
태어난 내집이야 높은 곳이지만
낮게 사는 지혜가 천성이기에
내자리가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낮은 곳이 멊으면 나는 못 산다오
유연해야 살아가는 숙명이기에
연하고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바위를 녹이고 뚫고 다니는 것도
형체가 없는 듯 부드럽기 때문이니
행여 찬바람에 얼어 붙으면
사르르 녹지 않곤 살아날 수 없다오
숨어 들어야 몸값을 하는 숙명이기에
몸 속에 숨어들어 생명을 살리고
뿌리 속을 파고 들어 꽃 피게 하고
가지마다 영글게 해 열매 맺게 하나니
바위 같이 강팍하고 단단함도 좋지만
한번쯤 물이 되어 부드럽게 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