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나눔

원군희
02교구
욥기32-37장 묵상
2024-06-09

 

 

 

□욥기 32:18.

1장과 2장은 사탄이 욥을 시험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3장은 견디기 힘든 고난을 당한 욥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였고, 4장부터는 욥과 그의 세친구 엘리바스(4-5,15,22장),빌닷(8,18,15장), 소발(11,20장)의 말과 욥의 답변(6-7,9-10,12,14,16-17,19,21,23-24,26-31장)으로 이어지는 동안 듣고만있던 최연소자 엘리후가 연거푸 6장(32-37장)에 걸쳐 말하고 있다. 그는 친구들이 놀라 말을 못함을 보고(32:15)18절에서 '할 말이 가득하다'고 말하면서 자기 생각을 쏟아놓고 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말을 경청하고 인정하고 믿어 주려는 자세가 아닌 자기 생각과 철학 안에 갇혀 폐쇄적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최근에도 나는 억울한 사정이 있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말만 하고 싶고, 자기 입장만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숨이 막힌다. 교회를 욕하는 사람들이 옳다. 나는 교회이기 때문에 답답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생각,주장,감정,의견이 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취향,가치관,능력이 다름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한 가지 말과 한 가지 생각으로 일치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서로의 다양한 면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타인의 생각을 들어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걸 억압하고 무시할 때 사회는 폐쇄적이고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나타내서 각종 사건,범죄,생명이 아닌 죽음을 만들어낸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나는 말과 행실이 율법 안에 갖혀 타인을 정죄했던 유대인적 모습을 벗어나 하나님의 무궁한 다양성과 창조성, 자율성과 인간적인 품성을 지녀야 한다.

 하나님!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선택하게 하여 주소서. 성급한 말로 연약한 지체를 실족케 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욥기 32:20-22

엘리후는 사람을 상대로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는 모습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말하고 싶은바를 마음껏 표현하는 성격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아첨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께 입을 벌리고 사랑의 대상인 사람에게는 가급적 입을 다무는 것이 좋음을 경험상 깨닫게 되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힘이 있고 혀를 제어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잠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한마디의 말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날마다 실감한다, 차라리 말하지 않고 잠잠히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자기 의를 드러내고 상대를 가르치려 하다가 지나친 정의감이 연약한 지체를 실족케 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님!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선택하게 하여 주소서. 성급한 말로 연약한 지체를 실족케 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욥기 33:14~33

욥의 친구 엘리후가 생각하는바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여러차레 말씀하셔도 사람이 관심이 없을 때 꿈에나 환상 중에 경고하셔서 두렵게 하시는데 이는 사람을 고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혼과 생명을 지키시고, 징계를 주실때

그가 음식을 거부하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극심한 고통 속에 있을 때, 

중보자를 세우시고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건져 주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시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를 입었음을 기뻐하며 사람 앞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게 된다.

하나님의 구하심의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심이다.

엘리후는 욥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자세를 취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 욥이 그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서 위로와 용기를 주었을지 의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엘리후도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인생의 이치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이 말할때 경청하고 자기가 말할 기회를 기다리는 성숙한사람이었기에 보통 사람보다 수준이 높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나보다 사려가 깊지만, 결국 우리가 읽는 성경 속에서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보다 못함을 보게 된다.

욥기를 읽으면서 판단하고 정죄하고 충고하는 것보다 잠잠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분명히 힘이 있고 좋은 결과를 만나게 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적은 지식을 가지고 충고하는 것보다 주님께 기도하여 은혜를 입게 하려는 태도가 좋은 것을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줘서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욥기 34:35-36. 

욥의 친구들은 욥에 대해 오해하고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인정하는 욥을 악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욥을 위로하고자 찾아왔으나 이제는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한다고 악담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셨으면 욥은 억울한 심정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의 위험성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앓고 내면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도록 하심으로서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게 하셨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판단하다가 오해로 그릇된 평가와 진단을 내리며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있다.

로마서2장1절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남을 판단하지 않아야 하겠다.

하나님 아버지 !

보는 것이 제한적인 육체의 눈으로 사람을 판단하여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지 않도록 저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온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매순간 저를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욥35:6-8

6,7절에서 엘리후의 말은 옳지 않다.

나를 지으신 분께서는 내가 악함을 싫어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로울 때 기뻐하신다.

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 정상참작이나 가중처벌로 차등하여 적용하듯 하나님도 극심한 고난 속에서 부르짖는 탄식의 소리를 불평으로 듣지 않으시고,  억지로라도 순종함을 원하시는 분이시다.

한달란트 받은 자가 하나님을 오해하였다가 하나님을 노엽게 했던 것처럼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사랑과 공의로 반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에 더 마음을 쏟자.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욥의 고난을 통해 의로운 자에게도 고난을 허락하시고 불의한 자도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이해할 수 없는  섭리를 순종함으로 바라보며 제 안에 오직 감사와 찬송만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욥기 36:2-4

뭔가 확신있게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함을 실감한다.

엘리후는 먼데(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직식을 바탕으로 확신을 갖게 되었다(3절,4절).

엘리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위해(2절) 살고자 하는 열심이 엿보인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내가 마치 하나님인듯 착각하면 안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위치에서,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음을 알지 못한 채 누군가를 가르치고 정죄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연약함과 죄성을 날마다 고백하고 내 속에서 언제든 싹트고 나오려하는 악한 본성을 다스리는 것이 나의 바른 태도다.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말씀대로 살아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다.

말 할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교만하지 않아야 하고,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

마치 완전한 사람인듯, 완벽한척, 의로운척 말하고 생각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죄인을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은혜를 입어 겸손과 온유함으로 주님께 쓰임받는 선한 도구가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욥37:14-24

연소자 엘리후는 평소 자기가 자연 현상을 관찰하다가 깨달은 하나님에 관해 연장자인 욥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14절 ...깨달으라

15~17절 ...아느냐?

18절...그대는...할 수 있겠느냐

20~24절 .....느니라

19절에서는 오히려 욥에게 가르침을 달라고 말한다.

 

누구나 자기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지식들이 있다. 

대화할 때 대화의 상대방이 자기보다 많이 알지 못할꺼라고 여겨질 때는 우월감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지식들은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확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와닿지 않으면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다.

그런 지식이 말하는 사람에게는 진리이고 사실일지 몰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쓰레기와 같다. 

특히 그 사람이 어떤 것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일 때 와닿지 않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으니 그 지식들은 듣는 사람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 

대화는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설득하려는 것도 지혜롭지 못하다. 

아무것도 와닿지 않는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하고 지적하는 투의 말은 대화의 기본을 모르는 고집스런 사람의 행동이라고 보여진다. 그는 배려심보다는 이기심이 많은 것으로 보여진다.

주님처럼 대화하여 그를 제자삼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주님께 배우자.

하나님 아버지

저도 주님처럼 지혜롭게 대화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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