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나눔
[2023.03.27 사무엘하11:1-13]
주제 :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죄의 다스림을 받게된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다윗의 모습은 새롭다.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모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 누구나 이렇게 넘어질 수 있다. 여태까지 영적싸움에서 승리하고, 어려운 고난을 견뎌내고, 굳게 믿음으로 살아왔던 사람도 마지막까지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 얼마전 몇번 갔던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올라가는 길에 시시하다는 교만한 생각을 했었는데 길을 잃어버리면서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던 적이 있다. 광야와 같은 인생에 하나님 앞에 설때까지 깨어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다윗의 이상한 점들이 많이 있다.
1절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 왕들이 출전할때라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다윗은 직접 출전하지 않고 부하들을 "보냈다" 그리고 성경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라고 증언한다.
아니 어려운 상황속에서 앞장서서 전쟁터에 나갔던 다윗은 사라지고, 본인이 출전해야 할때 사람을 보내고, 자신은 그대로 남아있는 다윗으로 변화되었다. 그는 사명의 자리, 본인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난 것이다.
—> 쉬고 싶을때가 있다. 쉬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잊어서는 안된다. 나의 쉼까지도 사명의 자리를 위한 쉼이어야 한다. 다윗은 잠깐 쉰 것이 아니다. 사명의 자리를 완전히 떠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쉼이 하나님과 사명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과 쾌락으로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은 출전하지 않았을까???
그는 교만했다. 내가왕이니까. 이제 안정적이니까. 내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을 부리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보상심리도 있었을 것이다. 여태고생했는데, 이제는 좀 쉬어도되잖아. 이제 안정적인데.
그래서 다윗은 편안함을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하나님의 사명과 멀어지는 게으름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결론이 나온다.
"다윗은 본인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왕.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 내 뜻과 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왕. 모두가 나의 눈치를 보고, 나의 명령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절대군주라고 생각했다.
역설적이다. 본인이 왕이라고 생각하니, 왕들이 출전할때 출전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왕되심을 잊었다. 하나님이 왕이되서야 하는 자리에 자신이 앉았다. 그럴때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왕이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세상과 죄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왕 노릇하고 있는 다윗에게 이제 부터 영약한 사단은 유혹을 하기 시작한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났다(2절)
어쩌면 다윗의 삶은 질서정연한 삶을 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의 삶이 무너졌을 수 있다. 낮과 밤이 바뀐 삶을 살며 무료한 하루를 보냈을 수 있다.
그때 왕궁 옥상을 거닐었다. 왜 그랬을까? 옥상에 올라가면 도시가, 나라가 다 보인다. 내가 다스리는 나라, 내가 왕인 나라. 그곳에 올라가 바라보며 다윗은 얼마나 자신만만했을까. 그런데 그에게 보인 것은 목욕하는 한 여인이었다.
다윗에게 보였다는 것. 그가 관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밧세바를 봤다는 것은 다윗은 그 전부터 여인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제 왕이니 , 여러명의 아내를 데리고 살아도 되는 고대 근동지방의 왕처럼 행세하고 싶었는데 마침 밧세바가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멈췄어야했다. 멈춰야 할 포인트1.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는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이 누구인지알아보게 했다. 그리고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임을 확인하였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여인이었다면 후궁으로 데리고 오면 되니까 그나마 괜찮은데, 이미 결혼을 한 여인이었다면 다윗은 멈췄어야 했다. - 멈춰야 할 포인트 2
다윗은 멈추지 못하고 전령을 보내어 밧세바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동침했다.
죄는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눈덩이와 갔다. 굴러가면 갈수록 점점 빨라진다. 그리고 점점 커진다. 빨리 멈췄어야 됐는데 멈추지 못하니 죄가 점점 커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밧세바가 임신을 하였다.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들통도 안났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만약 밧세바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제2, 제3, 아니 제100의 밧세바가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임신한 밧세바로 인하여 다윗은 긴장을 하게 된다. 자신의 죄를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가 마지막 멈춤포인트-3이다.
하지만 다윗은 멈추지 못한다. 회개하지 못한다. 돌이키지 못한다. 어떻게든 죄를 숨기려 한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목숨걸고 싸우고 있는 우리야를 데려오지만, 우리야는 오히려 더욱 신실한 모습으로 다윗을 마주한다. 우리야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편안함이 아니라 자신의 상사인 요압,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 그리고 언약궤를 생각하며 편안한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다윗은 여기서 멈춰야 했는데, 멈추지 못한다.
—> 죄의 반복성과 점진성을 생각해본다. 죄는 점점 반복되고, 커져간다.
—> 교만이 문제이다. 내가 왕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않기 때문이다. 묻고, 묻고, 또 묻던 다윗의 모습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는 것. 하나님의 다스림을 , 인도하심을 받지 않을때 유혹이 찾아온다.
* 적용 및 기도 - 1.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순간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께 묻고, 구하며 결정하고 움직이는 하루 되게 하소서!
2. 제가 있어야할 자리를 이탈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 마땅히 감당해야할 사명을 미루지 않게 하시고, 대심방부터 계획안 작성하는 일까지도 성실하게 감당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3. 심플한 삶을 살게 하소서. 주로 밤에 세상을 쫓아갈 때가 많이 있고, 시간을 버릴때가 많습니다. 새벽기도를 중심으로 하루가 돌아가게 하시고, 온갖 유혹들로 부터 지켜주옵소서. 자리를 피할 수 있는 지혜 주소서. 멈출 수 있도록 깨닫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