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거리
무작위로 열 명의 사람에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묻는다면 아마도 열 가지 다른 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나 즐기는 것으로 사랑을 정의하곤 합니다. 이 세상에는 서로 대립하는 수많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한 진정한 정의는 사람의 문화나 가치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는 요한일서 4장 8절 말씀처럼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에 대한 모든 올바른 정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전체 구절이 모두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6절은 사랑이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불의란 하나님과 그분의 방식에 반하는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고 잘못된 일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는 것이 바로 불의입니다.
본질적으로 불의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까다로운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이를 두고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한다면 이러한 사람과도 예수님의 진리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니면,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면 이를 두고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이러한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증언하고 이 진리에 따라 살고 다른 사람과 이 진리를 나누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시간을 내어 사랑에 대한 여러분의 정의가 하나님의 정의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세요. 사랑에 대해 잘못 생각해 온 것이 있나요?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바꿔야 할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요? 목록을 만들어 기도한 후에 이들에게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나누세요.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 고린도전서13장
고요함의 힘
우리는 바쁜 사람들입니다.
일터와 집, 가족과 친구, 꽉 찬 스케줄과
끝없는 업무 사이에서 얼굴 들 새도 없이 하루를 서둘러 마치고 싶은 유혹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편 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편 46:10 )
가장 최근에 자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멈췄던 때가 언제인가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할 만큼 몸과 마음이 고요했던 때가 언제인가요?
이전과 상관없이 오늘은 무엇을 선택할 건가요? 성경 앱을 끄고 해야 할 일 목록에서 “하나님과 시간 보내기”에 체크한 다음 하던 업무를 계속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주님의 진리와 지식을 통해 쉼 없는 마음을 평안으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고요함에는 자신을 넘어서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고요함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필요를 고양시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과 삶에 존재하는 선하거나 악하거나 마음을 빼앗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더 높은 자리에 모시고 그분을 경외하며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우리가 준비되었는지에 대한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실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모든 비밀이 밝혀질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좋든 싫든 주님께서 온 나라 위에 높임받고 전 세계에서 영광을 누리실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우리 삶의 왕으로 모시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잠잠히 모든 것을 멈추고 주님이 하나님 되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