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나눔
오늘 본문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부활을 무엇이라고 정의 하느냐 입니다
오늘 본문 51절 -52절 말씀입니다.
51절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사도 바울은 부활을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비밀이라고 번역된 말씀은 영어로 미스테리 라고 번역했는데요.
로마서 11장에 보면 종말에 일어날 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말 성경으로는 신비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쉽게 풀어보면,
종말에 관해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 바로 비밀이며, 신비이다.
종말에 일어날 부활이라는 것은 비밀이고, 신비이고, 감추어졌던 것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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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바울이 드러냈으니 이제는 비밀이 아닐까요?
본문에 보면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는 감추어져 있고, 누구에는 드러나 있을까요?
1. 첫 번째는 예전 사람들에게 감추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비밀을 풀어내기 전의 사람들 입니다.
예전 사람들은 종말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특별히 오늘 다루는 부활에 대해 몰랐을 것입니다.
물론 구약에도 부활에 대한 희미한 언급은 있습니다.
신약에도 예수님께서도 여러차례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선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2. 두 번째는 영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48절에 보면 흙에 속한 자들이 나옵니다.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왁 같으니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선명합니다.
하지만 흙에 속한 사람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감추어졌다.
3.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비밀이며, 신비인 부활을 온전히 알고 있는가?
한가지 두려운 것은 이미 주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이 부활은 감추어져 있을수 있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여전히 비밀, 여전히 신비로 감추어져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식적으로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삶으로
진정으로 소화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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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우리는 부활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부활을 살고 있는가?
1. 부활을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 일까요?
광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광야에서의 훈련이 민수기 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다음부터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광야 에서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사람들을 광야에서는 강하게 징계하십니다.
- 다른 불을 드리다가 아론의 자녀 나답과 아비후가 죽임을 당합니다.
- 안식일에 나무한 사람이 바로 죽임을 당합니다.
- 불순종한 이들에게 불뱀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부활을 먼 훗날의 이야기로만 치부할때가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천국 환송 예식을 드릴때에만 조명되는 말씀.
먼 훗날의 이야기로 부활을 우리가 생각하면
초대 교회 당시 일부 성도들처럼. 부활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 한 후에야, 부활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실상 오늘 이순간부터 우리는 부활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닌지?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57절 58절에 말씀 합니다.
57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내게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는 확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그리고 담대함 가운데 주의 일에 힘쓰고 있다면 나는 오늘 부활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두 번재, 질문은 과연 나는 부활을 소망하고 있는가?
이 땅에서의 문제는 대부분
부활이 우리에게 있어 희미해졌기 때문에 발생되는 일들입니다.
너무 세상의 것만 집중하고 있다면 우리는 부활을 잃어버릴수 있습니다.
C.S 루이스라는 20세기 위대한 변증가는 부활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가 지금 소망하고 있는 부활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이 있습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천장에 매달린 전구 하나입니다.
그 지하 감옥에서 여자 죄수의 아이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소망한다는 것은 감옥에서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어머니가 밖에 대해서 그림으로 그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아이는 단 한번도 밖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려준 그림으로 바깥세상에 대해 배우기만 합니다.
어머니는 점과 점이 이어진 선들을 통해서
햇빛과, 바람과,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꽃과 다양한 동물들을 그려주지만,
여전히 아이는 선 너머에 있는, 실체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는 부활 하고 나서야,
진정으로 따사로운 햇빛을 쬐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바라보며, 맛보며 누리게 될것입니다.
이 땅에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는 모든 것이 본질이며, 실제인 부활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두 가지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1.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것인데,
먼 훗날이 아니라, 오늘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반석 위에 서게 하시고,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의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2. 뿐만 아니라, 나의 어렵고 힘든 삶의 자리에 집중하기 보다,
부활의 날을 소망하며, 꿈꾸게 하소서. 본질을 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