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거리
물질 없이는 이 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물질은 꼭 필요하지만, 물질이 주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하찮은 인생이 아니다.
신앙의 태도는 돈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나타난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겠다면 마음을 돈에 빼앗기지 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돈을 구하지 말고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가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는 말씀처럼 자족하는 것을 배우자.
성경은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도 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도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돈이 많은 사람을 보면 너무 쉽게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여긴다. 하나님을 믿으면 가치관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되면 세상을 좇지 않는 것인데, 물질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을 많이 본다.
하나님이 물질을 많이 주셨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숙제다.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받은 것인데, 그저 부러워만 한다.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있지만, 사업이 너무 잘되는데 어떻게 하냐고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돈이 많아서 위험해질 수 있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이러한 걱정이 필요하다. 물질이 많아질수록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서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은 돈이 가진 막강한 힘으로 움직여진다. 그래서 맘몬이 자리 잡은 신앙이나 교회는 온전하기 힘들다.
하나님 중심으로 똑바로 생각하고 중심을 잡자.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이유는 돈이 나에게 안전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안전, 미래에 대한 안전이 보장될 것 같은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빌 3:7-9
하나님을 만난 후에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것에 대한 가치를 배설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 땅의 가치에 대해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사도 바울에게 분명히 드러났던 이 세상에 대한 태도와 가치의 변화였다.
미국에 월마트라는 창고형 매장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로, 창고형 할인점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월마트의 창시자는 샘 월튼(Sam Walton)이다. 그는 창고형 매장을 처음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자 계속 사업장을 늘려갔다. 사업장이 점점 늘어나자 부인인 헬렌 월튼이 말리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어요. 더는 필요한 게 없어요.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해요? 당신은 계속 잠을 못 자고 있어요.”
그러나 샘 월튼은 부인의 조언을 듣지 않고 계속 창고를 늘려갔다. 헬렌 월튼은 자서전에서 “내 남편이 열일곱 번째 창고를 오픈할 때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라고 했다.
땅의 것을 이룰 때 얻어지는 즐거움은 상당하다. 그러나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는 없다. 헬렌 월튼의 말처럼, 진짜 죽을 때까지 그 일만 하다가 죽는다.
미국에서 가장 큰 부자로 잘 알려진 록펠러는 “얼마나 더 많은 재산이 있으면 좋겠냐?”라는 질문에 유명한 답을 한다. “Just little bit more”(조금만 더).
성공한 부동산 사업가 출신이자 미국의 45대 대통령이기도 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당신의 자산이 얼마나 더 있으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지금보다 10퍼센트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돈이 얼마나 더 있으면 행복하겠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그들도 부자들과 같은 답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10퍼센트만 더 있으면 행복하겠다….” 그러나 이 10퍼센트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그 10퍼센트가 채워지는 순간 또 10퍼센트를 채우려고 할 것이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10퍼센트 때문에 돈을 좇는 인간은 영원히 만족을 얻지 못한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을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예수를 믿은 우리에게 일어나야 하는 세 가지의 회심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마음의 회심, 둘째는 정신적인 회심, 셋째는 지갑의 회심이다.
돈에 대한 분명한 변화가 있지 않고는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맘몬은 그만큼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은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돈이 나의 주인이 되는 즉시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 아니시다. 말로는 주님을 섬기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돈에 끌려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고 있는가?
돈에 대한 태도가 신앙을 입증한다. 돈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다루느냐가 우리의 신앙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다른 것은 적당한 선을 지키며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진정으로 섬기는 대상이 돈인지 하나님인지, 우리의 노선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신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만족하며 자족하는 삶을 사는가? 아니면 지금보다는 더 있어야 만족하겠다고 생각하며 사는가? 하나님이 지금 주신 것에 만족할 수 없다면,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10퍼센트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지금 고백하지 못하면 영원히 고백하지 못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어떤 상황과 어떤 형편 속에서도 우리는 부족하지 않다.
만약 전지전능하시고 우리를 잘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주시지 않는 것이라면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간구해서 얻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땅의 것을 얻어야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은 것이고, 이 땅의 것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기복적인 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땅의 것에 얽매이게 된다. 신앙이 힘을 잃고, 믿음은 길을 잃는다. 물질에 대한 하나님 중심의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
– 계속 이대로 살 수는 없다, 홍민기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6-10)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