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나눔
오늘 말씀을 보면,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몇몇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 아룁니다. 그때, 예수님은 살해당한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8장에 근거해서 어떤 사람이 복을 받으면 율법을 잘 지킨자이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은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 이미 아시고 실로암 망대 사건을 통해 깨우치시고 계십니다. 즉,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죄를 지은 결과때문이라고 일반화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작년에 욥기 말씀을 통해 보는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물론 죄로 인해서 하나님게서 고난을 주시고, 질병을 주실 수도 있지만, 모두 다 그런 것이 아님을 예수님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고난을 당할 수도 있고,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재난과 질병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시차의 문제”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현상을 가지고 “죄가 있냐 없냐”를 논하기 보다, 그러한 현상이 “지금 나에게 있는가 아니면 나중에도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고난에 대해서, 질병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자유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주변에 많은 어려움들을 사람들을 향해 “나에게는 저런 일이 없으니 참 다행이다.” “저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해서 저렇게 된거야”라고 함부로 단정짓고 해석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예수님은 두어 사람들에게 3절과 5절에서 거듭 거듭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즉, 너희에게도 충분히 임할 수 있는 일이기에 서로 율법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다만 너 자신의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목회자로서 설교를 하거나, 성도님들을 가르칠 때, 다른 사람의 죄나 허물은 잘 발견하고, 또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만, 정작 나 자신의 신앙생활과 영성에 대해서는 의례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넘어갈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도 주님의 은혜 없으면 동일하게 죄 가운데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회개의 삶, 성화의 삶으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