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거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로마서 / 유기성
제가 군목으로 부임한 부대의 지휘관인 연대장이 교회 집사였습니다.연대장은 저에게 교회에서만 설교하지 말고 내무반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병사들이 있는 내무반에 찾아갔습니다. ‘인격지도’라는 과목으로 군목이 와서 특별히 말씀을 전한다고 하니 당직사관이 병사들을 다 집합시켜 주었지만, 한두 군데 다녀보고 저는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다들 아주 귀찮아했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눈을 감고 앉아 있기도 하고 대부분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병사들이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TV도 보고 책도 보고 편지도 쓰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병사들에게 전할 진정한 기쁜 소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복음은 병사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부끄럽지 않다고 했습니다.그가 형편과 여건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의 형편은 제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복음은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로마는 당시 전 세계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중심지입니다. 로마제국에서는 당대 최고의 영화와 권력을 가진 황제가 신(神)으로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복음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나중에는 엄청난 핍박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지하 무덤에서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모두 빼앗기고, 아무 저항도 없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경기장에서 짐승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예수를 믿고 싶어 했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복음은 조롱받았습니다.
그런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고, 데살로니가에서 추방당했고, 베뢰아에서 몰래 탈출하였고, 아덴에서 조롱당하였고, 헬라인에게는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았고, 유대인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또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복음이 부끄러웠습니다. ‘안 들을 텐데, 싫어할 텐데, 귀찮아할 텐데….’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병사들을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결국 군인 형제들의 문제가 아니라 저의 문제였습니다. 당시 저는 목사였지만 복음을 교리로만 알았지 진정한 복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군목으로서 저는 엄청난 좌절에 빠졌고, 결국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병사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복음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들이 군(軍)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한 번도 복음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없을 형제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들이 듣기 싫어해도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는 분명해졌습니다.
저는 복음이 정말 기쁜 소식인지, 불신자의 입장에서 복음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나하나 깨우쳐주셨고 그렇게 깨달아지고 누려지는 복음을 저녁에 병사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반응이 없다가도 말씀이 끝날 때쯤에는 모두 저를 주목하였고, 기도해드리겠다고 할 때에도 모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3년간 군목생활을 했습니다. 나중에 군단장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이전에 제가 복음을 부끄러워했던 이유는 복음을 단순히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천국에 간다”는 속죄 교리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이 교리로 그치면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 사는 것입니다.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가 속죄함을 받았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속죄해주신 부활의 주 예수님이 지금 내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이제 나는 예수님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눈이 열리지 않았을 때는 복음을 전해도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눈이 뜨이면서부터는 제 삶과 목회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비참한 고난을 당했던 로마 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300년 동안 지하 무덤에서 살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나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다는 교리를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주 예수님이 함께하시고, 주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알고, 그 주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지하 무덤에서도 하루하루를 기쁨과 감사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300년을 견딜 수 있었고, 마침내 로마가 뒤집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동안 복음을 교리로는 알았지만 그 복음의 감격을 몰라 복음을 전하기에 부담스러웠던 분이 있다면 저랑 친구합시다. 저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정확히 몰랐습니다. 교리를 복음이라고 알고 한동안 헤맸습니다.
저 역시 로마서를 읽으면서 복음을 알았고 완전히 뒤집어지는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로마서를 읽으며 복음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복음을 정확히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분명히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복음의 영광을 경험하게 되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에 눈이 뜨일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