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체조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
2021년 11월 9일(화)
<공동체로 생명의 삶 읽기: 욥 21:1-16>
1. 도전: “그들은 자기들의 성공이 자기들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의 생각을 용납할 수 없다.”(16절, 새번역)
2. 상황: 욥은 7절에서 악인의 형통을 바라보며 질문한다.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하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의 결국은 멸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악인의 생각과 다르다. 그들은 자기 성공이 자기들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고난 중에 있는 욥이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악인이 성공하고, 의인이 고난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그가 몸소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악인은 벌을 받고, 의인은 형통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악인은 잘 나가고, 반대로 의인은 궁핍하고 초라하다. 욥이 지금 처한 처지처럼 말이다.
삶이란 단순하지 않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도 있다. 그런 불합리와 이성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인생은 신비이고, 그래서 인생은 유한하며, 하늘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3. 변화: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5-6).
주님, 악인의 형통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그들의 최후를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인생의 참된 생명과 소망은 오직 주님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