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거리
*주기도문 2번째 "이렇게 기도하라"
마태복음 6장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브라함을 가리켜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그다지 특별한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복덩어리다.
너를 통해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여전히 겁쟁이이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인 일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통하여 약속의 자녀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걸 기다리지 못해 가지고 하갈이라고 하는 여종을 통해서 아들을 낳아 버립니다
이런 실패하는 아브라함의 모습,그 대로 살지 못하는게 우리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이런 우리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존재의 변화는 경험을 했는데, 어울리게 살지 못하는 연약한 인생인 걸 알기 때문에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의 기도와 다른 종교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입니다.
모든 종교에 보편적으로 기도라는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 대부분의 기도의 출발점은 언제나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안에 무언가 결핍이 있고, 모자람이 있고,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달라고 기도 하는 게 일반적인 기도의 출발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기도의 출발은 우리가 아닙니다 나에게 기도에 출발이 있는 게 아니라, 하늘 아버지로부터 이 기도에 출발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명령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존재의 변화로 일으키셨으나,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면 존재에 걸맞게 살지 못하는 것을 아시기에 기도를 명령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해야만 우리가 성도답게 살 수 있다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다고 명령하시는 겁니다.
이게 우리 기독교의 기도와, 다른 종교의 가장 커다란 기도에 대한 차이점입니다.
비록 지금은 연약하고 힘이 없고 유혹 앞에 넘어지기 쉬운 존재이지만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 기도 가운데 응답하심으로 우리가 능력을 공급받고 하나님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새로운 능력으로 살 수 있다, 이걸 명령하고 계신다는 말이지요.
이 기도에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