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거리
생명보다 소중한 사명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과 가장 비슷하게 살았던 사람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주저하지 않고 바울을 가장 먼저 선택하겠습니다.
바울의 위대함은 그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닮으려고 애를 썼다는 데에 있습니다.
바울의 가장 큰 소망은 주님처럼 살다가 주님처럼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이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예견하고 준비했듯이, 바울 또한 그의 마지막이 어떠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이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행20:23).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전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남긴 고별 메시지에 담긴 내용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십자가에 달리셨듯이, 바울은 자신에게도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예루살렘으로 굳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아주 단순합니다. ‘생명’보다 ‘사명’이 더 귀하기 때문이랍니다(행20:24).
이것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려고 하는데, 그 ‘생명’보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이 더 소중하다고 하니 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항상 ‘생명’이 가장 소중한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믿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협박에 벌벌 떨며 비겁하게 생명을 보존하면서 인생을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은 ‘살라’는 ‘명령’입니다. 사명은 ‘보내진’ ‘명령’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생명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명이 전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 받아 쓰임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생명보다 사명을 더 소중히 여기겠다는 결단입니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 보다도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사명 없는 장수보다 사명 때문에 짧게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우리에게도 생명보다 소중한 사명이 있습니까? 생명을 불사르면서도 끝까지 붙들 수 있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닮아 살아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