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거리
왜 연약함을 사랑하실까.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연약함밖에 없기 때문이다.
못하는 것과 모르는 것밖에 없다.
연약함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구석이 참 많은 우리다.
나이가 더해지면 조금 더 알게 될까?
경험을 많이 하고 견고하게 계획을 쌓으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작은 우연과 변수에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 우리다.
손이 들어가지 않은 장갑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손가락질도 할 수 없고 작은 물건도 들 수 없다.
우리가 그런 존재다.
하나님 없이는 ‘내’가 아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리 많은 것을 잘하고 많은 것을 가져도, 아무리 정체성을 찾고 자아를 이룬 것 같아도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면 온전할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삶은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는 절대 완성되지도 채워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연약함을 사랑하신다.
사람의 연약함은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연약함 때문에 가장 귀한 것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약함 때문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등을 지고 멀어지기만 했다.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가 생각났고 집으로 돌아갔다.
무한한 연약함은 무한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선한 빌미를 제공한다.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흔들리는 믿음을 고백하며 낮아질 때,
어쩌지 못하는 어려움 앞에서 나약해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그래서 사랑받을 만한 모습이 없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넘어질 거면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고
약해질 거면 하나님 앞에서 약해져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하나님밖에 몰라야 한다.
빛은 어둠에서 일하고, 온기는 한기에서 일하듯 강하신 하나님은 약함에서 일하신다.
약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파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못나서 하나님께 붙들리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일하신다.
약함과 실패가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일을 만들 것이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굳건하게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배신한 후 가장 부끄럽고 가장 무너졌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양을 먹이는 일이 맡겨졌다.
타는 듯한 눈빛으로 기세 있는 얼굴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던 강한 바울이 아니라
시력을 잃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게 된 바울에게 하나님의 일이 맡겨졌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건 이집트의 왕자일 때가 아니라 광야의 도망자일 때다.
미디안을 치시기 위해 사용하신 건 큰 용사가 아니라 몰래 밀을 타작하던 농부 기드온이었다.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의 눈에 띄게 한 것은 세리장이라는 명예와 부자라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키가 작다는 약점이었다.
꽃보다 잎이 먼저 핀다.
꽃이 피기 전 잎은 부지런히 햇빛을 받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꽃처럼 화려하고 멋진 장점보다 잎처럼 조촐하고 단출한 단점만 가득하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약함으로 햇빛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함과 단점을 주셨다.
그것으로 우리를 만나시고 일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는 약하다는 것과 약한 만큼의 한계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연약함을 사랑한다고 속삭이시고,
연약함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시고,
연약해도 괜찮다고 외치신다.
그래서 연약해도 괜찮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며 아버지께 돌아가도 좋을지,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아야 할지 주저할 때
아버지는 그 모습도 괜찮다고 변함없는 기다림으로 외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귀한지 약해지면 알게 된다.
이렇게 죄도 많고 초라하고 믿음도 없고 보잘것없는 나조차도 사랑하시는 걸 보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귀한지 알게 된다.
이것이 약함의 유익이다.
약함이 있는 이유는
약해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완전한 삶이기 때문이다.
- 페이지 처치 / 신재웅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 사 3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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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으로 인해 애굽 땅에 하나님이 선포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드러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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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옷을 입은 요셉은 하나님을 선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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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절할 형들에게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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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감옥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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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고통과 눈물과 절망이 믿음의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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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에게 감옥에서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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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과 같은 터널의 시간도 무의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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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무의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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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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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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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낮고 낮은 시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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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하나님이 당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우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