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체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이용한 이스라엘”
9월 19일(주일)
<공동체로 생명의 삶 읽기: 사사기 21장 1-15절>
A. 본문관찰
(단락 나누기)
1-4절. 미스바에서의 맹세
5-9절.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
10-12절. 이스라엘 백성이 야베스 길르앗을 진멸함
13-15절. 베냐민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언함
B. 큐티체조
1. ↑(위로 하나님): 나오지 않음
2. ↓(아래로 인간):
1) 신명기 7장의 법(헤렘)을 베냐민에게 잘못 적용한 것(20장)에 이어, 또 다시 야베스 길르앗에 잘못 적용한 이스라엘.
2) 신명기 7장의 가나안 사람과 결혼을 금하신 명령(신 7:1-5)을 자신의 동족 베냐민에게 잘못 적용한 이스라엘.
C. 저널링
1. 도전: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2~3절)
2. 상황: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이유는 자기중심적이며 기회주의적인 동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제는 베냐민과 전쟁을 해서 그들을 진멸했으나, 다음 날은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된 것을 안타까워한다. 모순적인 모습이다.
베냐민 지파가 멸절될 것을 걱정하는 이들이, 야베스 길르앗의 형제들을 진멸한다. 역시 모순적인 모습이다. 일관성이 없다. 왜 그럴까? 바로 자기중심적이며 기회주의적인 동기로 말씀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삿 17~18장에서 미가의 집의 제사장으로 일했던 레위인은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미가를 배신하고 금세 단 지파를 따라 간다. 단 지파는 처음에는 미가에게 도움을 받다가, 금새 그의 우상을 훔치고 레위인을 데리고 가며, 미가를 위협하고 협박한다.
삿 19장에서 에브라엠의 레위인은 집을 나가 넉 달 동안 돌아오지 않은 첩을 데리러 유다 베들레헴까지 가지만, 기브아에서 냉정하게 무뢰한들에게 첩을 내어준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명분 쌓기와 합리화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그분의 말씀 속에서 성령님이 보여주시는 뜻을 분별하고, 거기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과 확신을 갖고 살 수 있다. 그러나 기복주의적인 동기로 하나님을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내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보조수단 밖에 되지 않는다.
3. 변화: 주님, 철저히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주님을 위한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내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게 하소서.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게 하소서.